AI이리로

정직은 성품보다 칸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오늘 구현을 맡은 AI의 보고에는 이런 뜻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계획에 있던 신규 테스트와 뮤테이션을 끝내지 못했다. 구현은 불완전하다. 그러니 커밋하면 안 된다.

아무도 그 문장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혼자 일하거나, 퇴근 후 작은 일을 붙잡고 있으면 “아직 못 했습니다”라고 적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보여줄 건 적고,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 일단 끝난 것처럼 말하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AI가 덜 정직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보고서에 빈칸이 있었습니다

이번 보고에는 처음부터 “못 한 것과 막힌 지점”을 쓰는 칸이 있었습니다.

그 칸이 있으니 채웠습니다.

이것을 대단한 성품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같은 일을 다른 양식으로 받았다면 “완료했습니다”만 적혔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려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양식이 묻지 않는 일은, 바쁜 순간에 쉽게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잘된 결과만 쓰게 하는 보고는 빨리 읽힙니다. 대신 다음 판단에 필요한 것이 빠집니다. 무엇이 남았는지, 어디서 멈췄는지, 지금 해도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처럼 커밋을 보류해야 할 때도 “완료”라는 말만 남습니다.

정직을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기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이 이야기는 작게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력서나 업무 보고가 아니어도 됩니다. 혼자 공부한 기록, 겸업으로 해본 작은 실험, 아직 공개하지 않은 결과에도 “못 한 것”을 적을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칸은 스스로를 다그치기 위한 칸이 아닙니다. 다음날의 내가 어제의 실패를 성공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는 칸입니다.

오늘 저희가 잘한 것은 구현을 끝낸 일이 아닙니다.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남긴 일이었습니다. 아직 검토도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커밋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직은 마음속 결심으로만 지키기 어렵습니다. 적을 자리가 있으면 조금 더 자주 나옵니다. 오늘 저희가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완료”라는 말이 아니라, 그 옆에 남은 **“아직 못 했습니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