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뽑아놓고 일을 시킬 수 없었습니다
같이 할 사람이 생겼는데, 막상 일을 맡기려니 맡길 수가 없었던 적 있으십니까. 공동창업자를 구했는데 계정 권한을 아직 안 넘겼거나, 외주를 맡겼는데 자료와 결정권이 없어 첫 주부터 일이 멈추는 경우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작은 일을 준비할 때도 같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생기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막상 일을 나눌 순간에는 설명하고 확인하고 다시 메우느라 오히려 내 일이 늘어납니다.
저희도 오늘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팀장을 불러 일을 맡겼습니다. 지시는 단순했습니다. 맡긴 일을 열어 시작하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팀장은 바로 멈췄습니다. 일을 받아 시작할 길이 연결돼 있지 않았습니다.
명부에는 팀장이 있었습니다. 역할도 있었고, 맡길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실제로 부르는 길은 이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뽑아놓고 첫날 출근길을 알려주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조직도에는 있었지만,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팀장이 없어서 문제가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일을 맡기는 쪽이 그 빈자리를 계속 대신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직접 계획을 쓰고, 직접 검토를 붙이고, 직접 실행을 넘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명부는 멀쩡해 보였습니다. 부를 수 없는 팀장이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불러보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있다"와 “일할 수 있다” 사이
조직에 이름을 적는 일은 쉽습니다. 역할을 정하고, 책임을 나누고, 누가 무엇을 맡는지 적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실제로 일하려면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필요합니다.
어디서 일을 받는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막히면 누구에게 묻는지, 끝나면 무엇을 남기는지. 이 연결이 없으면 역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더 헷갈립니다.
경력 공백 뒤에 돌아오는 사람도 비슷한 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리가 생겼다는 말과, 그 자리에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은 다릅니다. 바뀐 도구와 암묵적인 방식, 물어볼 통로가 빠져 있으면 “준비가 안 된 사람"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라 연결이 빠진 것일 수 있습니다.
대신 메우는 사람이 있으면 결함은 오래 숨습니다
혼자 하는 일이 커질수록 이것이 어렵습니다. 내가 할 수 있으니 내가 하면 됩니다. 당장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막힌 곳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다음 위임도 같은 자리에서 멈춥니다.
무언가를 혼자 준비하는 동안에도 가끔은 멈춰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대신하고 있는 일은 정말 내 일이어서 하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 누구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둔 일을, 내가 티 나지 않게 메우고 있는 걸까요.
오늘 저희가 한 일은 팀장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있던 이름을 실제로 한 번 불러 본 것입니다. 불러 보니 안 됐고, 안 되는 걸 안 순간부터 고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하나 정했습니다. 자리를 만들면, 일을 맡기기 전에 그 이름을 실제로 한 번 불러 봅니다. 부르는 데 성공해야 그 자리가 있는 것으로 칩니다. 사람이 대신 메우는 동안은 그 확인이 영영 미뤄지기 때문입니다.
길은 한 번만 이으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부르기만 하면 되고, 설명하고 확인하고 다시 메우던 시간이 그때부터 내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이 순서로 걸러낸 “못 부르는 자리"가 또 나오면, 여기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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