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만든 걸 자기가 검사했는데, 점검표는 초록이었습니다
혼자 일하거나 퇴근 후에 뭔가를 만들고 계시면, 검사할 사람이 나뿐인 상황이 기본값일 겁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검사합니다. 그럴 때 “만든 사람이 자기 걸 검사하면 안 된다"는 말은 지킬 수 없는 훈수처럼 들립니다.
저희 회사에는 그 말이 안 어기기로 한 규칙으로 걸려 있습니다. 만든 사람이 자기가 만든 걸 검사하지 않는다. 지키는지 보려고 화면도 하나 만들어 뒀습니다. 오늘 그 화면을 다시 재보니, 규칙을 어긴 기록이 이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화면은 여태 초록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번만 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까지 손이 여러 번 오갑니다. 만들고, 남이 검사하고, 고치고, 다시 검사하고. 저희 화면은 그 오간 기록에서 맨 마지막에 만든 사람과 맨 마지막에 검사한 사람을 꺼내서, 둘이 다르면 초록을 켰습니다.
그런데 규칙을 어기는 자리는 대개 중간입니다. 중간에 한 번, 만든 사람이 자기 걸 검사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두어 번 손이 더 오갔고, 마지막 두 칸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습니다. 중간의 그 한 번은 뒤에 온 기록에 덮여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결재란이 하나뿐인 서류를 떠올리시면 비슷합니다. 마지막에 남의 도장이 찍혀 있으면 그 서류는 “검토됨"입니다. 그 앞에서 본인이 본인 걸 한 번 훑고 넘겼는지는 서류에 남지 않습니다. 칸이 하나면 알 수 있는 것도 하나입니다.
고친 방법은 세는 방식을 바꾼 것뿐입니다
값 두 개를 비교하는 대신,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걷기로 했습니다. 걸으면서 무언가를 만든 사람을 명단에 계속 쌓고, 검사가 나올 때마다 그 사람이 명단에 있는지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단을 중간에 비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미 남이 한 번 검사했으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봐도 되지 않나” 쪽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남이 검사했든 말든 그 물건을 만든 건 여전히 저입니다. 명단을 비우는 방식도 나란히 돌려봤더니, 오늘 찾은 그 위반이 다시 초록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대로 너무 빡빡하게 잡으면 화면이 쓸모없어집니다. 만든 사람이 지적을 받고 다시 만드는 건 정상입니다. 그것까지 빨갛게 칠하면 정상적인 일이 전부 빨개져서, 진짜 빨간 게 묻힙니다. 그래서 걸러야 할 것과 걸러선 안 될 것을 열두 가지 경우로 만들어 하나씩 돌려봤습니다.
고칠 때 지킨 것 — 숫자로 확인하고, 처방도 의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기록 스물세 건에 옛 방식과 새 방식을 나란히 돌렸습니다. 판정이 갈린 건 한 건입니다. 나머지는 그대로였습니다.
이 숫자를 적어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검사를 고칠 때 제일 무서운 건 “이참에 더 엄하게 바꿨습니다"입니다. 그러면 어제까지 멀쩡하던 게 오늘 무더기로 빨개지고, 사람은 그걸 보고 검사를 꺼버립니다. 이번 건은 엄해진 게 아니라 새던 자리 한 곳이 막힌 것이었고, 그걸 말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하고 넘어갔습니다.
처방도 그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결함을 찾아낸 앞선 점검 문서가 고칠 방법도 같이 적어뒀습니다. **“바로 앞에 만든 사람 하나하고만 비교하자”**였습니다.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열두 가지 경우에 넣어 돌려보니 한 군데서 샜습니다. 제가 만들고, 남이 손보고, 그다음 제가 검사하는 경우입니다. 바로 앞에 만진 사람은 남이니까 통과되는데, 검사받는 물건 안에는 제가 만든 부분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문제를 찾은 사람이 해법까지 맞게 낼 거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찾는 눈과 고치는 눈은 다른 눈인 모양입니다. 이날 얻은 건 규칙 하나가 아니라 처방도 검사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무서웠던 건 따로 있습니다
이 화면을 만든 쪽은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규칙을 적어놓은 문장이 “마지막 것끼리 비교한다"였고, 만든 쪽은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맞는지 자동으로 확인하는 시험도 붙어 있었고, 그 시험은 계속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이 확인하고 있던 건 그 틀린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틀린 규칙을 정확히 지키면 점검표는 끝까지 초록입니다. 초록이 말해주는 건 “규칙대로 했다” 까지고, “그 규칙이 옳다"는 아닙니다. 저희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틀린 문장을 쓴 것도 이쪽 자리라, 이건 남 탓할 데가 없는 실수였습니다.
남는 것
검사할 사람이 나뿐이어도, 오늘 배운 것 하나는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규칙을 지킬 수 없더라도 언제 내가 내 걸 봤는지는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볼 때는 마지막 칸만 보면 안 됩니다. 순서를 처음부터 한 번 훑어야 중간에 낀 자리가 보입니다.
그 훑는 일을 사람이 매번 하면 빠뜨립니다. 그래서 저희는 화면이 하게 뒀습니다. 사람은 빨간 게 떴을 때만 보면 되고, 매번 훑는 데 쓰던 시간은 만들던 것으로 돌아갑니다.
이 화면이 다음에 또 놓치고 있던 자리를 찾으면, 그때도 여기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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