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일이 「한도에 걸려 죽었다」로 적혀 있었습니다
퇴근 뒤에 잠깐 열어 본 화면이 조용하면, 아직 처리 중인지 망가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기다리는 쪽이 더 안전해 보입니다.
저희도 오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같은 지적을 세 번 들었습니다.
잘 도는 것과 죽은 것이 화면에서 똑같이 생긴다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문제를 세 번 들은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원인은 각각 달랐습니다. 그런데 화면이 건네는 결론은 늘 같았습니다. “지금은 손댈 수 없다. 기다리자.” 오늘 저희는 그 기다림이 얼마나 비싼지 봤습니다.
끝난 일을 한도에 막혔다고 적었습니다
AI에게 맡긴 일이 정상적으로 끝났고 보고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기록은 그 일을 “한도에 걸려 죽었다"고 썼습니다. 실제 한도는 열다섯 퍼센트였습니다. 기록은 그 도구를 한 시간 쉬게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보고를 찾지 못하자 시스템은 출력 전체에서 “한도"라는 낱말을 찾았습니다. 그날 맡긴 일의 주제가 마침 한도 대시보드였습니다. 일의 실패 사유가 아니라, 일의 제목이 실패 사유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잠든 한 시간이 가장 큰 손실은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테스트를 다 쓰지 못한 채 끝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이 “한도"라고 말하니, 우리는 그 원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정말 일일 한도인가요?“라고 되묻지 않았다면, 한 시간을 기다린 뒤 같은 실패를 반복했을 겁니다.
없는 기록은 불편합니다. 그래서 찾아봅니다. 틀린 기록은 편합니다. 그래서 안 찾아봅니다. 오늘은 그 차이가 더 무서웠습니다.
보고는 멀리 있었고, 창은 좁았습니다
그 오분류를 따라가니 보고의 끝 표시는 저희가 들여다보는 창보다 한참 먼 출력 끝에 있었습니다.
“그럼 보고를 맨 끝에 쓰게 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적어둔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AI 도구는 보고 뒤에 자기 변경 요약을 더 붙일 수 있습니다. 맡은 쪽이 통제할 수 없는 출력입니다.
창을 넓히는 것도 답이 아니었습니다. 전에 작업서를 되풀이한 뒤 보고 양식을 남기고도 아주 긴 작업을 계속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을 좁혔습니다. 좁히면 보고가 잘리고, 넓히면 예전의 말이 판정을 오염시킵니다.
양쪽이 다 틀릴 수 있을 때는 “더 넓게 볼까, 더 좁게 볼까"만 고르면 안 됩니다. 무엇을 실패 신호로 인정할지를 다시 정해야 합니다. 오늘 저희가 고쳐야 했던 것은 창의 크기보다 판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빈 화면은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맡겨 둔 일이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는 살아서 돌고 있었습니다. 출력이 끝에 몰려서, 한동안 아무것도 안 찍혔을 뿐입니다.
반대로 빨간 오류가 남은 화면도 있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정상 출력은 걸러지고 오류만 남아 그렇게 보인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새롭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이미 “빈 기록으로는 진행 중과 죽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문서에 적어두었습니다. 그런데 화면은 아무것도 구분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문서에 썼다는 사실이, 일하는 순간에 보인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뭔가를 잘 고쳤다는 글보다, 무엇을 믿으면 안 되는지 적어두는 편이 맞겠습니다. 성공·실패·진행 중이 같은 모양으로 보이는 동안에는, 사람이 조심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다음에도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겁니다.
지금 보이는 것은 상태일까, 아니면 상태처럼 보이는 흔적일까.
그래서 기다릴지 들여다볼지를 사람 감에 맡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엇을 성공 신호로, 무엇을 실패 신호로 인정할지부터 다시 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조심하는 데 쓰던 시간을 돌려받는 일입니다. 고친 판정이 오늘 같은 헛기다림을 실제로 없앴는지, 여기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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